(독자투고) 나주 시내버스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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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나주 시내버스에서 생긴 일

김금례

김금례 사진.jpg


며칠 전 토요일 아침, 딸이 사는 나주혁신도시에서 신광리 한옥으로 돌아오기 위해 나주터미널에서 버스를 탔다.

 

버스가 막 출발하려는데 창밖을 보니, 잘 걷지도 못하시는 할아버지가 버스를 향해서 지팡이를 계속 흔들면서 세워 달라 하고 계셨다. 나는 기사님께  "할아버지께서 타시려나 봐요." 하고 말씀드렸더니 겨우 버스를 세웠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터미널 건물 안쪽에 있던 할머니에게 오라고 크게 고함을 치시는데도 할머니는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계시니 주변 사람들이 고함을 치니까 그제야 할머니가 건물 밖으로 겨우 천천히 나오셨다.

 

그러나 다시 버스가 출발하려 해서 나는 얼른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부축해서 버스에 타시도록 도와드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차비 계산하는데 한참이 걸린다.

 

차비 계산하시는 것을 도와드리고 앞자리를 둘러보니 빈자리가 없었다.

차가 달리자 할아버지께서 넘어지려고 하셔서 바로 첫 자리에 앉으신 아주머니께 "미안합니다. 자리 좀 양보해 주셔요."라고 부탁드리니 그 아주머니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별일 다 봤네. 지가 뭔데 일어나라 마라야?" 하면서 뒤쪽으로 갔다.

 

할아버지를 앉게 해드리고 할머니께는 차비 잔돈 받아서 갖다 드린 후 아주머니에게 다시 가서 "죄송해요. 할아버지가 넘어지시려고 해서 부탁드렸어요. 이 차가 떠나면 다음 차는 저녁이 되어야 오잖아요, 죄송해요."하고 사과를 드렸는데 "너무 친절한 것도 오버 아니야?" 하며 고함을 꽥 질렀다.

 

그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불편한 할아버지, 할머니 도와드린다는 생각만 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 안의 승객들도 모두 긴장해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아주머니의 마음이 풀어지길 기도하며 "죄송해요. 마음 푸세요."하고 정중히 말씀드리니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창밖만 보고 계셨다.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늘 손에 들고 다니던 묵주를 돌리며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아주머니를 기분 상하게 하고 기사님과 승객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제 탓입니다. 제 마음은 지금 슬프고 부끄럽지만, 이 마음을 봉헌하오니 아주머니의 마음을 풀어주시고 이 차에 탄 사람 모두와 그 가족들까지 모두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도록 은총 내려주세요.'

 

이렇게 흐르는 눈물을 몰래 훔치며 묵주기도를 하면서 신광리 마을로 돌아오는 동안 내 마음은 다시 기쁨으로 가득 찼고, 오히려 그 모든 순간이 감사한 마음으로 바뀌었다.

 

나를 무안하게 했던 그 아주머니에게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날 수도 있었고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었겠지만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받아들이니 기분 나쁠 일도 다툴 일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크게 깨달은 하루였다.

   

세상 모든 메마른 사람들의 마음 안에 사랑의 단비가 내려 사랑과 기쁨이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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