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섬에서 단순하게 살아 보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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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독자투고) 섬에서 단순하게 살아 보기 3

홍기 동화작가


바람


비우고 또 비워 

형체조차 비워내어

비로소 자유가 된 저 바람.


바람 소리에 잠이 깼다. 갑자기 큰 바람이 불어와 문이 덜커덩거리고 마당에서는 물건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러다녔다. 파도는 더욱 크게 으르렁댔으며 나무들은 허리가 휘는 고통을 참아내느라 신음했다. 

 

잠이 깬 김에 밖으로 나가 보았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바람은 자신의 길을 따라 어디론가 가고 있다. 목적 없는 행군이 아니라 ‘자유’라는 목적이 뚜렷해 보인다. 내가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더욱 단순하게 살아 보기 위해 이 섬에 들어온 것도 결국 ‘더 큰 자유’를 위해서다.

 

가로등 불빛 속에 대나무들이 바람결 따라 일렁인다. 그 모습이 꼭 춤을 추는 것 같다. 대나무뿐만이 아니다. 동백나무도 누리장나무도 키 큰 삼나무도 다 춤판에 동참하고 있다. 세상은 하나의 커다란 무도회장이 되었다. 

희미한 조명 아래 갖가지 무희들이 바람의 신호에 따라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때로는 강하게 또 여리게, 앉았다가 일어서기도 하며 춤에 열중했다. 이 순간만은 춤 이외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무에게는 춤이, 자신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기 위한 성스러운 의식이나 다름없다. 바람의 강요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순응하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환희를 획득하였고 꺾이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게도 되었다.

바람은 스스로는 소리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 다른 것들이 숨겨 두었던 소리를 깨울 수 있도록 내면을 자극한다. 바람이 스치며 겨드랑이를 간질이면 소리가 깨어난다. 대나무는 대나무의 소리를 내고, 삼나무는 삼나무의 소리를 내며, 전깃줄은 전깃줄의 소리를 낸다.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지만 결국 바람소리 하나로 통일된다.

 

방으로 들어와서도 귀는 여전히 바람을 향해 열어 두었다. 맨몸으로 바람 속에 던져져 있지 않고 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이 너무나 고맙다. 따끈한 방 안에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커다란 행운처럼 여겨진다. 이런 안락함은 선택받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이때쯤 되면 아련한 추억 속으로 가슴 설레는 여행을 떠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거의가 아파트나 양옥이라 그럴 일이 없겠지만 창호 문을 사용하던 그때는 날이 추워지면 어느 집이나 문을 새로 발랐다. 추위와 조우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다.

 

어머니는 해마다 가을이 다 가기 전, 햇살 따스한 날을 골라 고운 풀을 쑤어 문을 발랐다. 먼저, 돌쩌귀에서 문을 떼 내어 물을 축여 헌 종이를 제거한다. 문살 칸칸이 쌓인 먼지를 말끔히 닦아내고 문의 크기에 맞춰 재단한 한지를 붙인다. 

 

문고리 부분은 손을 많이 타서 찢어지기 쉬우므로 작은 종이를 덧대어 붙인다. 멋을 내기 위해, 안에 국화꽃이나 은행잎 단풍잎 따위를 넣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모서리에 문풍지를 단다. 그걸 달아야 바람길이 막혀 겨울을 더 따뜻하게 날 수 있다. 

 

마를 때 쭈글쭈글해지지 않고 반듯하게 펴지라고 입 안에 한가득 물을 품고 문 위에 뿜어 댄다. 그런 다음 햇볕 좋은 장독대에 비스듬히 세워 말린다. 이때 여지없이 고추잠자리 몇 마리가 날아와서 날개를 접고 앉아 쉬었다 가곤 했다.

 

겨울밤, 바람이 불면 문풍지가 삐일삐일 소리 내어 울었다. 바람의 강약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지만 그것이 오히려 리듬을 만들어내어 시끄럽지 않고 정겹게 느껴졌다.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것도 커다란 기쁨이다. 그래서 긴 겨울밤이 무료하지 않고 오히려 설레게 된다.

 

우리 마을 앞에 기찻길이 있었는데 지나가는 기차의 불빛이 문에 비치면, 문은 그대로 화면이 되었다. 화면 위에 집과 나무와 전봇대가 차례로 나타나며 신비한 영상을 만들어 낼 때 문풍지는 멋진 연사 역할을 해 내었다. 자신만의 화법으로 막 상영되고 있는 영화의 내용을 충실히 설명하는 것이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가 없는 그때는 한곳에 머물러 노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다. ‘살랑살랑 실바람을 잡아타고서’ 산으로 들로 싸돌아다니다 보면 하루해가 짧았다. 빨랫줄의 휘날리는 빨래, 게양대 위의 펄럭이는 국기, 고개를 숙이고 일렁거리는 강아지풀, 파르르 떨리는 잠자리의 날개, 황금 들판에 건들거리며 서 있는 허수아비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으로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와, 소유의 번거로움에서 완전하게 벗어난 바람이 나를 유혹한다. 오늘도 바람은 욕심을 비우고 자유롭게 살라는 메시지를 전해 온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의 돈과 명예와 권력은 물거품처럼 부질없다는 가르침이다. 바람이 이 한밤중에 나를 찾아온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잊어버릴라치면 바람은 다시 자신의 숨결에 이런 메시지를 실어 우매한 사람들의 혼을 일깨울 것이다. 대부분이 그 말을 무시하고 ‘더 높이, 더 멀리, 더 많이’를 외치며 무섭게 질주할 것이다. 목적을 이루든 그렇지 못하든 모두들 떠날 때에는 똑같이 이 세상에서의 모든 것이 다 부질없다는 말을 하게 될 것이다. 

 

바람 소리를 들으며 잠시 상념에 잠겼다.

 

▲ 이 글은 홍기 동화 작가가 펴낸 섬에서 단순하게 살아 보기’ (도서출판 그루 펴냄)에 실린 내용이다홍기 작가는 교사로 재직하다가 정년 3년을 앞두고 명예퇴직하여 남해의 작은 섬 두미도에서 단순하고 검소하게 사는 실험을 바탕으로 이 책으로 만들었다그는 가리산의 눈먼 벌치기’ 등 여러편의 작품을 발표한 바 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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